2017.05.26 11:55

독일 라이프치히, 아늑한 펜트하우스에 사는 남자
#해외     #10평대     #1인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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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진 찍는 일을 하는 김보리라고 합니다. 지금은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살고 있어요. 라이프치히는 물가와 월세가 저렴해요. 인구밀도도 낮고 공기도 깨끗하죠. 동독 중에서는 가장 크기 때문에 교통도 편리하고, 베를린하고도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아요. 단점이라면 동독 도시여서 인종차별이 심한 지역이 있습니다.

 

저는 이 집을 부동산 사이트를 통해 구했습니다. 130통 정도의 메일을 보냈고 열 군데 넘게 통화를 했으나 딱 네 군데에서 답장이 왔죠. 지금 사는 집만 계약할 수 있었기에 이 집에 살게 되었습니다.

 

*원목 서랍장 - 드레스덴에서 구입한 1970년대 빈티지

 

가구를 사려고 고민해도 고민대로 살 수는 없었습니다. 멋진 빈티지 가구를 사고 싶어도 독일어를 못해서 못 사는 경우도 많았고, 차가 없어서 못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었죠. 택시를 부르면 되지만 그렇게 되면 비용이 너무 비싸졌어요. 그냥 '내 눈에 예쁜 것' 중 살 수 있고 혼자서도 들고 올 수 있는 물건들, 배송이 가능한 물건들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 가구를 들일 때 ‘가구 이름’과 ‘50유로(한화 5만 원 정도)’ 같은 검색어를 넣어서 하루에 몇 시간씩 이베이를 검색했어요. 지역 중고 매물 사이트도 마찬가지였죠. 영어로 보내면 열 명 중에 아홉 명은 답장하지 않았어요. 번역기를 이용해 독일어로도 보내기도 했으나 많이 놓치곤 했었습니다. 이베이에서는 구매자가 최우선입니다. 저 같은 경우 물건이 잘못 배송되었거나 파손되었을 경우 100% 환급을 받았습니다. 다소 시간은 걸리고 귀찮은 일이지만 사기를 당하는 사례는 적죠.

 

집에 있는 물건 중 가장 아끼는 것은 이탈리아에서 배송된 조명기구입니다. 제일 먼저 산 빈티지 물건이기도 하고 경쟁자가 많아 어렵게 낙찰받은 물건이기도 합니다. 1973년에 만들어졌고 깨지거나 고장 난 곳이 없어 앞으로도 오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Mercure Hotel Leipzig 에서 구입한 40년 된 연회용 의자)

 

혼자 산 지는 13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혼자 살아도 식기와 의자는 넉넉한 것이 좋습니다. 언제든 친구들을 불러 음식을 나눠 먹을 수 있으니까요. 또 의자가 많으면 그만큼 구역이 많아집니다. 각 자리에 앉아서 하는 일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됩니다.

 

집에 여백이 많은 편입니다. 사실 아무것도 없이 지내고 싶지만, 살림이라는 게 그렇게 되지는 않잖아요. 저는 짐이나 살림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늘 경계하고 있어서 일정 수준 이상은 채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한 사람이 사는 집에 짐이 많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고요.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암체어와 비치체어가 있는 곳입니다. 편하게 누워있을 수 있고 바깥을 볼 수도 있고 책을 읽다 졸 수도 있지요. 제 의자들의 방향은 언제나 창가를 향하고 있습니다. 방향도 모두 달라서 자리마다 매력이 있어요.

 

이곳에서는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창밖을 보거나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귀 기울여 보거나 하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 중에는 오전 시간을 가장 좋아합니다. 늦잠을 자느라 많이 못 보긴 하지만 오전에 해가 바로 들어올 때, 일광욕하기 좋거든요.

 

한국에서부터 <사진찍어줄게요>라는 프로젝트를 해왔습니다. 누군가의 집에서 촬영하는 프로젝트에요. 5년 정도 150여 명과 함께 이곳저곳에서 진행했고 현재도 진행 중이죠. 독립한 사람들은 집이 누추해서 안 되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부모님 집이라 안되고 이런저런 이유로 집에서 사진 찍기를 고민하지요. 마음은 무인양품 베이지색 리넨 침구류인데 현실은 지마켓 보라색 극세사 이불이잖아요.

 

그래서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런데도 용기 내서 신청해주시는 분들이 점점 더 많아져 기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보면 좋을 사진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거죠. 당장은 누추한 집이라서, 형광등 불 아래에서 찍어서 예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도 우리 삶이고 현실이고 시절입니다. 하찮고 예쁘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집은 저의 첫 집이었습니다. 계약서에 서명하고 부동산 직원이 우편함에 ‘KIM’이라는 종이를 끼워주고 갔는데 그걸 한참 바라보았어요. '이렇게 멋지고 아늑한 펜트하우스가 내 집이라니.'라는 생각에 벅찼습니다. 물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제 이름으로 계약한 첫 집이자, 종업원 일을 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서 월세를 내며 생활한 첫 집이었습니다.

 

곧 이사하는데 이 집에서 머문 시간을 돌아보면 대단한 순간보다는 앞뒤도 없는 순간이 짧게 기억나요. 아마 이 기억이 오래가기도 하겠죠? 아랫집 고양이가 놀러 왔다 가거나, 창밖으로 까마귀 떼가 날아다니는 것을 한참 보았던 순간, 의자에 앉아 졸던 후덥지근한 여름날의 오후 같은 것들이요. 친구들이 놀러 왔고 맛있는 것을 해 먹고 이불을 널던 순간들, 그런 것들이 오래 남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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