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25 11:55

긴 시간을 담고 있는 물건들을 파는 가게, 시간의 무늬
#제주     # 이색공간     # 빈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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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무늬는 제주도 돌창고를 손수 고쳐 만든 작은 빈티지, 잡화점입니다. 예전부터 예쁜 물건들을 모아 진열하는 게 취미였어요. 모아놓고 보니 시간이 담긴 물건들이 많았죠. 자연스레 제가 꾸린 공간은 시간이 담긴 것들과 보기에 좋은 것들을 수집하고 소개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처음 제가 이 공간을 구했을 때, 이곳은 폐가였어요. 집에서 대부분을 들어냈지만 거실 천장에 있는 아주 오래된 벽지는 정말 예쁘더라고요. 남겨두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지금 그 무늬는 시간의 무늬 로고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게를 열기 전 1년 동안은 안 거리(본채)에서 여성 전용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어요. 이름을 정해야 했는데 당시 빠져있었던 시집 이름이 『침묵의 무늬』였거든요. 그래서 그랬는지 공간의 가장 큰 개성을 부여하는 낡은 벽지를 보며 ‘시간의 무늬’라는 이름을 떠올렸습니다.

 

빈티지 가게를 열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게와 ‘시간의 무늬’라는 이름이 너무도 잘 어울려 놀랍고 행복했습니다.

 

긴 시간을 담고 있는 오래된 물건에는 각기 다른 시간의 무늬가 남아있으니까요.

 

몇 년 동안 홀린 듯 제주도를 여행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바로 다음 비행기 표를 끊곤 했죠. 점점 내려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커졌고, 살만한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제주에 사는 친구가 빈 농가주택을 구했다고 연락을 주었는데, 집을 보지도 않고 결정 내렸습니다. 지금도 큰 행운이자 선물이었다고 생각하고, 친구에게 고맙습니다.

 

폐가를 얻어 공사할 때, 가장 중요한 일은 ‘비워내는 것’이었어요. 벽지와 바닥을 뜯어내고 더 쓸 수 없어진 모든 것을 들어내는 과정이지요. 공사 중에 가장 지난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8년간 사람이 살지 않은 폐가이긴 하지만 그 전에 사시던 분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지금 가게에 있는 거울과 자개장 등은 이 집에 사시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두고 가신 것들입니다.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오래되고 아름다운 것들이지요. 깨끗이 닦고 보수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집의 돌벽을 그대로 사용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공사 첫날 지붕을 철거하는 도중에 네 개 중 두 개가 무너졌어요. 워낙 낡은 축사였거든요.

 

그래서 친구와 직접 조적(벽돌 쌓는 일)을 쌓게 되었죠.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덕분에 안정감 있는 공간이 된 것 같아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사한 직후에는 벽돌색을 그대로 살렸었는데, 물건을 진열하다 보니 진하고 매트한 배경이 필요해 보였어요.

 

그래서 작년 겨울, 초록색 페인트를 칠했습니다. 물건이 더 돋보이고 조금 더 제가 원하던 공간 분위기를 갖추게 되어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런 공사는 혼자 하기엔 어려웠는데, 다행히도 주변에 목수 친구가 있었습니다. 기술뿐만 아니라 취향도 좋은 친구였죠.

 

무엇보다 꼼꼼해서 제가 긴 공사에 지쳐 타협하려고 하는 순간, 작은 차이의 효과에 대해 짚어주며 저를 설득했어요.

 

여행을 다니며 개성 강한 가게들을 보고 감탄할 때가 많았거든요. 공간과 사물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주인과 닮아있었어요.

 

인상적인 점은 그런 가게의 주인들이 틀어놓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 모습이 행복해 보였죠. 아름답고 개성 있되 자연스러운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가게의 외관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제주에는 돌 창고를 개조한 가게들이 많이 있지만, 저희 가게의 돌벽과 납작한 지붕 등이 만들어내는 느낌은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시간과 예산을 아끼기 위해 낮은 지붕으로 결정했는데, 이 작고 네모난 모습이 만들어내는 소박하고 비밀스러운 느낌이 마음에 들어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처음에는 지금 가게를 ‘빌린 공간, 곧 떠나야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기에 금전적으로 아끼면서 꾸렸거든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3년이라는 시간을 매일 보내게 될 공간이라는 걸 느꼈어요. 제 삶에서 적잖은 시간이잖아요.

 

돈을 떠나 스스로 만족스러운 공간이어야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다른 마음가짐으로 더 정성스럽게, 더 고집스럽게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가게 바로 옆이 집이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이 30초라는 점은 정말 좋아요. 하지만 가끔 영업시간을 모르고 아침에 오셔서 문을 두드리시는 분들이 있어 곤란할 때도 있지요.

 

가게와 집이 가깝다고 생활반경이 전보다 좁아지진 않은 것 같아요. 가게 문을 닫은 후엔 차를 타고 바다로 오름으로 짧게라도 자주 다녀오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제주도에 내려온 이유기도 하고요.

 

가게는 혼자 운영하고 있어요. 영업시간에는 꼼짝달싹할 수 없어 아쉬울 때가 있지만, 혼자 일하는 것을 선호하고 그런 공간에 제 취향을 마음껏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지요.

 

취향을 갖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시간도 자신의 취향으로 채우면 훨씬 더 풍요롭게 보낼 수 있어요. 그래서 자신의 취향을 분명히 알고 꾸준히 개발시키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게의 물건들은 여행지, 오래된 가게, 벼룩시장 등 각기 다른 곳에서 왔어요. 한 번에 많은 물건을 구하지 않고 조금씩 틈틈이 구하는 편입니다.

 

물건을 고를 때는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찾습니다. 개인의 취향으로 가득하다 보니 시간의 무늬는 호불호가 갈리는 곳이기도 해요. 대신 취향에 맞으시는 분은 격하게 애정을 표현해주셔서 저도 기분이 무척 좋아지곤 하지요.

 

갖고 싶어 고른 물건을 팔기에 아깝지 않으냐고 묻는 분들이 있어요. 네. 정말 단순히 제 눈에 예쁜 물건들이기에 아쉬울 때가 있죠.

 

하지만 가게를 1년 넘게 운영하면서 물건을 고르고 모으고 다시 보내는 과정에 아주 익숙해졌고, 지금은 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애정이 갔던 물건은 꼭 사진으로 남겨둡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그래. 이런 것들이 있었지.’ 하며 보려고요. 나중에 이 가게를 떠나면서 책으로 엮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가게 안에서 보내는 시간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은 비 오는 날이에요. 비가 올 때, 촛불을 여러 개 켜두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앉아있는 시간을 가장 좋아합니다.

 

바닷가에 산책하러 갈 때마다 바다에서 쓸려온 나무들을 주워오곤 합니다. 멋진 모양의 나무들이 많아요. 대나무는 물에 강해서 어업에 많이 쓰이거든요. 모양이 예쁜 대나무를 골라 짙은 색의 스테인을 발라 가게 이곳저곳에 걸이로 활용했습니다.

 

바닥 미장과 에폭시 코팅을 직접 시공했어요.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울퉁불퉁하게 되었죠. 균일하지 못한 높이와 습기 때문에 에폭시가 군데군데 빙판처럼 갈라졌습니다.

 

처음엔 속이 상하고 어떻게 가려야 하나 고민했는데, 손님들이 바닥 무늬가 예쁘다며 방법을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모습 그대로 두기로 했어요.

 

아름다운 물건들을 아름답게 진열해 두는 것이 제가 물건과 공간을 향유하는 방식입니다.

 

물건들 여럿이 함께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좋아요.

 

각기 다른 곳에서 온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물건들도 조금의 낭만을 보태면 멋진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모두가 자신의 공간에 작더라도 자신의 취향을 모아놓은 한구석을 만들었으면 해요.

 

가끔 이리저리 구도를 바꿔가며 애정을 쏟는 시간 또는 하루에 몇 분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니까요.

 

시간의 무늬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1431-1

매주 수 휴무

open 13:00- close 18:00

이선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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