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30 11:55

한 사람을 위한 큐레이션 책방, 사적인 서점
#이색공간     #네츄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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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서점에 가면 책을 처방해준다. 의사가 약을 처방해주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끄덕여주고, 들은 이야기를 퍼즐처럼 맞춰 상대에게 어울리는 책을 골라준다. 이런 일이 이뤄지는 작은 서점은 6평짜리 작은 공간이지만, 들어서는 순간 그 넓이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사적인 서점은 한 사람을 위한 큐레이션 책방입니다. 책방 주인과 일대일 대화 후, 오직 한 사람을 생각하며 고른 책을 배송해 드리는 ‘책처방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죠. 책처방 프로그램은 한 시간이 소요되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예약 손님 이외에 다른 손님은 받지 않고 있어요.

 

책처방 프로그램은 100% 예약제로 운영됩니다. 예약은 사적인 서점 블로그에서 받고 있고요. 비용은 1회 5만 원으로, 블로그 캘린더의 예약 가능 일정을 참고해 신청 양식을 작성하면 24시간 이내에 입금 계좌를 포함한 프로그램 예약 안내를 문자로 알려 드려요.

 

서점을 열기 전에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예약제로 운영하는 서점도 처음이고,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책을 골라 배송하는 운영 방식도 처음이라 손님이 와줄까 싶었죠. 참고할 만한 데이터도 없어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작년 10월에 사적인 서점을 오픈하고 만 9개월 정도가 지났어요.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어요. 그동안 약 250명의 손님이 책처방 프로그램을 이용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8월까지 예약이 마감된 상태고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곳이 필요하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구나, 실감하고 있습니다.

 

책처방 프로그램을 이용하시는 손님 중에 저희 부모님 또래의 분들이 오실 때가 있어요. 신청서를 보니 61년생 남자분이셔서 걱정했던 적이 있거든요. 제 걱정이 민망하게 손님은 친절하고 재미있고 배울 점이 많은 분이셨어요. 참여 중인 독서 모임에서 “이런 책방이 있으니 대표로 체험해 보라.”고 멤버 다섯 분이 만 원씩 비용을 내주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가장 아껴 읽는 책은 무엇인지, 참여 중인 독서 모임에서는 어떤 책을 읽는지, 요즘은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손님이 제게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이란 시를 낭독해 주셨어요.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거든요. 서운할 때마다 화가 날 때마다 만병통치약처럼 곱씹다 보니 어느새 시 한 편을 뚝딱 외워버렸다고 말씀하시는데, 순간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책처방 프로그램을 하면서 제가 손님에게 배우는 게 더 많아요. 그럴 때 책방 주인이 되길 정말 잘했다고, 자랑할 이유가 또 하나 더해지죠.

 

사적인 서점이 있는 공간은 원래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에디터 등 여러 사람이 작업실로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에요. 네 명이 함께 쓰는 큰 방, 두 명이 쓰는 작은 방, 공용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죠. 전 직장에서 일할 때 알고 지냈던 그림책 출판사 대표님이 이 공간을 관리하고 있는데, 두 명이 쓰는 작은 방이 한꺼번에 비게 되면서 연락이 왔어요. 제가 서점을 하고 싶어 하시는 걸 알고 계셨거든요. 사실 그 당시 프리랜서로 맡고 있었던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내 서점은 내년 정도에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공간을 보는 순간 ‘여기다!’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바로 계약을 했고 작년 10월에 오픈하게 되었죠.

 

처음엔 걱정이 많았어요. 다른 분들은 일하러 나오는 공간인데, 서점은 어쨌든 상업 공간이라 손님이 드나들고 시끄러울 테니까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싶었거든요. 다행히 사적인 서점은 예약제로 운영되는 방식이라 일반 서점만큼 손님의 출입이 많지 않고, 서로 배려하면서 지내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사용하고 있어요.

 

함께 공간을 사용하는 일은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아요. 혼자 일하는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식사도 그렇고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어서 외로울 때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저희는 공동 부엌이 있어서 시간이 맞으면 함께 식사도 하고 회사 동료처럼 일상 얘기, 일 얘기 등을 나누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혼자 일하는 외로움이 덜해요. 서로 영역은 다르지만 같은 문화계에서 일하기 때문에 도움되는 부분도 많고요.

 

사적인 서점은 홍대 중심가, 그것도 큰 대로변에 있어 접근성은 좋지만 건물 4층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월세가 저렴해요. 권리금도 없고요. 요즘은 SNS를 통해 가게를 홍보할 수 있고 가게의 개성과 색깔이 확실하다면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기 때문에 꼭 1층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처음 구했을 때의 상태가 좋았기에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페인트칠을 깨끗하게 새로 칠하고 조명을 바꿔 단 것 외에 다른 인테리어를 한 게 없거든요. 작업실로 쓰기 이전에 포토 스튜디오로 사용하던 곳이라 창문이나 문 등의 공간 디테일이 예뻤어요. 인테리어 공사 비용을 세이브 할 수 있다는 것도 이 공간의 큰 매력이었죠.

 

공간에 손때가 많이 타 있어서 따뜻한 느낌을 주는 화이트 컬러로 남편과 직접 페인트칠을 했어요. 그다음 을지로 조명가게에 가서 책방에 어울릴 심플한 조명을 사서 달았고요.

 

인테리어는 크게 손볼 곳이 없었기 때문에, 가구와 식물, 소품 등 디테일에 좀 더 신경을 썼습니다. 서점 곳곳에 놓인 소품들은 일본 여행을 하면서 나중에 책방을 열면 써야지, 하고 모아두었던 것들이에요.

 

사실 저는 책방을 열기 전까지 한 번도 식물을 키워본 적이 없었어요. 식물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죠. 책방 오픈 선물로 식물을 여러 개 받고 나서 처음으로 키워보게 되었죠. 서점 공간이 채광도 굉장히 잘 되고 바람도 잘 드나드는 곳이라, 식물이 자라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더라고요.

 

서점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식물에 물을 줘요. 그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죠.

 

조금씩 자라나는 식물을 볼 때마다 제 일상도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그 뒤로 여유가 생길 때마다 한 개씩 반려식물들을 늘려나가고 있어요.

 

창가에 걸어둔 나뭇가지는 플라워 스튜디오 ‘토크어바웃’에서 책방 오픈할 때 작업해 주신 거예요. 주변에 꽃을 만지거나 식물을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지인들이 많아서 여러모로 도움을 받고 있어요.

 

서점 오픈 준비를 하면서 책 다음으로 가장 신경 썼던 것이 가구였습니다. 주변에서 “소규모 서점에 가면 다들 거기가 거기 같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예산이 적은 탓에 비교적 값이 저렴한 찬넬 선반으로 벽면 서가를 만들고, 이케아 같은 저렴한 가구로 공간을 채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죠. 사적인 서점은 공간에서 확실한 차별화를 두고 싶었습니다.

 

특히 손님과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는 책 처방 프로그램이 메인이었기 때문에 그 특색을 공간에서도 잘 살리고 싶었어요. 여러 가구 업체를 알아보다가 ‘아이네 클라이네’라는 소규모 가구 공방을 알게 되었죠. 의뢰인의 직업에 따라 각각 다른 디자인으로 제작한 책상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홈페이지에 들어가 살펴보니 스튜디오의 작업 방향이나 디자인 작업물 등이 마음에 꼭 들어 제작 의뢰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점의 컨셉을 설명해 드렸더니 목수님께서 제안을 해주셨던 게, 테이블에 파티션을 달아서 상담 창구 같은 느낌이 들게 하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상담할 때는 양쪽 벽이 막혀 있으니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고, 서점 문을 열고 들어올 때는 그 파티션이 쇼윈도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이달에 집중해서 소개하고 싶은 책을 놓을 수도 있고요.

 

벽면 서가도 많은 책을 꽂아서 사용하는 용도라기보다는 표지가 보이게 진열하고 소품을 함께 진열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높이 조절이 가능한 디자인으로 제작해 주셨습니다.

 

서점 창업 비용의 3분의 1이 테이블과 벽면 서가 제작에 들었습니다. 원래 정해놓은 가구 예산보다도 훨씬 오버되었어요. 하지만 고객의 요구사항을 세심히 듣고 원래의 공간과 가구에 잘 어우러지는 디자인을 제안하는 아이네 클라이네에서 가구를 제작했다는 것 자체가 스토리텔링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예산 문제 때문에 결정할 당시에는 고민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대만족하고 있습니다.

 

서점에 오시는 분들이 책에 대한 질문 다음으로 가장 많이 묻는 게 가구일 정도로 아이네 클라이네에서 제작한 가구 두 개가 공간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소가구나 집기에 신경을 덜 쓰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예로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는 8인용 테이블을 구매해야 하는데, 가구 예산이 부족해서 임시방편으로 한샘에서 11만 원 정도 하는 저렴한 테이블을 구매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이 종종 이 테이블 마음에 든다고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세요.

 

가격을 말하면 깜짝 놀라죠. 중심을 잡아주는 두 가구의 완성도가 매우 높아서 함께 놓인 다른 가구들도 멋있게 보이는 것 같아요.

 

아쉬운 것은 바닥 부분이에요. 초기 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공간 인테리어에 돈을 많이 쓸 수가 없었거든요. 게다가 바닥 공사라는 게 세팅이 끝나고 나면 영업 중에 공사하기가 어려운 부분이잖아요.

 

얼마 전에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했었는데, 사적인 서점의 색깔을 잘 드러내는 30종의 책들을 큐레이션해서 가지고 나갔어요. 한 손님께서 책들을 쭉 살펴보시더니 “여기 서점은 색깔이 확실하네요.”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소설, 에세이, 실용서 할 것 없이 자신만의 삶의 태도와 방향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들만 모여 있다면서요.

 

온라인 서점은 제공할 수 없는, 책을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어요. 무인양품에 가면 스탬프 코너가 있어서 구매한 노트에 직접 꾸밀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잖아요. 서점에서도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스탬프 모으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동안 여기저기서 여행하며 모았던 스탬프들과 사적인 서점의 로고 스탬프, 책을 산 날짜를 표시할 수 있는 날짜 스탬프 등을 비치해 두었어요. 책은 어디서 사든 간에 다 똑같은 책이지만 사적인 서점에서 산 책에는 스탬프로 자기만의 책을 만들 수 있는 셈이죠.

 

사적인 서점은 ‘책으로 들어가는 입구’ 같은 서점을 표방하고 있어요. 그래서 책처방 프로그램 외에도 책의 재미에 빠질 수 있도록 다양한 이벤트들을 기획해서 진행해요.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워크숍은 ‘일본어 원서 함께 읽기’ 수업이 있는데요. 여자 공감 만화로 큰 사랑을 받는 마스다 미리의 원서로 일본어를 공부하는 수업이에요. 마스다 미리를 좋아해 수업에 참석한 사람이 일본어를 배울 수도 있고, 반대로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 수업에 참석한 사람이 마스다 미리의 책에 빠지게 될 수도 있죠.

 

정기적이지는 않지만, 서점 안에서 책과 관련된 전시를 진행하고 있어요. ‘냉정과 열정 사이’는 서점을 바라보는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을 가진 출판사의 책을 소개하는 전시였어요. 각기 다른 출판사와 했던 인터뷰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한 곳은 냉정한 시각으로 소규모 서점을 주목했고, 다른 한 곳은 희망찬 시각으로 주목한 점이 인상 깊었어요.

 

‘서점’이라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 제작자의 성향과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 수 있다는 점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었죠. 7월에는 도쿄 카모메북스와 함께 일러스트레이터 야마우치 요스케의 전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서점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한 가지 분명한 건 책이 있어서 삶이 즐겁고 풍요로워지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서점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난다는 거겠죠.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책의 즐거움을 전하고 싶어요.

 

도전 말고 시도, 라는 말을 좋아해요. 서점을 열고 싶어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다니던 회사를 과감하게 그만두고 짠, 하고 서점을 오픈하는 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인생을 바꾸는 도전을 한다는 건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크니까요. 저 역시 서점을 차리겠다고 어렵게 결심하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지만, 내가 정말 사업을 할 수 있을까?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실제 책방 오픈을 결심하기까지 8개월이란 시간이 더 걸렸어요.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인생을 바꾸는 큰 도전이 아니라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시도들을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새 이 정도면 책방을 열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그렇게 작은 시도들을 이어가다 보면 전혀 다른 길이 열릴 수도 있고요. 도전 말고 시도, 이 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책과 사람을 잇고, 독자와 저자 사이를 잇는 우편배달부 역할을 해나가고 싶어요. 7월에 열리는 도쿄 카모메 북스와 협업 전시처럼 한국과 일본의 책방을 연결하는 일도 계획하고 있고요. 사적인 서점을 통해 더 많은 분이 책이 있어 풍요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빠듯한 일상에 쉼표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면, 마음을 털어놓을 적당한 타인이 필요하다면,

 

책으로 일상을 풍요롭게 꾸려나가고 싶다면 사적인 서점을 찾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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