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19 16:55

서촌 인왕산 자락에서 듣는, 오래된 연립주택 이야기
#주택     #10평대     #빈티지     #플랜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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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화장품 회사 향수 사업부에서 브랜드 마케팅을 했던 유상경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고 식물과 인센스 관련 작은 브랜드를 준비 중입니다.

 

 

 

 

저는 서촌 인왕산 아래 오래된 집을 할아버지 댁처럼 꾸며 살고 있는데요. 시공을 진행하지 않고 스타일링만으로 인테리어를 진행했기 때문에, 큰 공사 없이 인테리어를 해보고 싶은 분들, 특히나 저처럼 편안하고 촌스러운 무드를 좋아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집들이를 시작해 봅니다.

 

 

 

인왕산 가는 길목에 자리한 집

 

 

제가 살고 있는 집은 19평 연립주택입니다. 인왕산 가는 길목에 있는 집이라 산과 계곡이 가깝습니다. 집 앞으로는 사계절이 변하는 모습을 가까이 경험할 수 있는 숲 뷰가 펼쳐지고 아침이면 새소리가 들려요. 그리고 주변엔 귀여운 고양이들이 돌아다닙니다. 물론 말씀드리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는, 집이 산 근처에 있어서 생기는 단점들도 같이 있어요.

 

 

 

인테리어 전 모습

 

 

 

인테리어 컨셉은?

 

 

'작가 헤밍웨이가 집을 꾸민다면 어떻게 꾸몄을까?'라는 질문이 컨셉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상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전 원래 인테리어라곤 부착식 면도기 걸이밖에 몰랐던 보통 남자였던 터라 컨셉을 잡을 때 제가 좋아하는 소설에 기반해서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핀터레스트, 인스타그램, 국내 및 해외 인테리어 잡지들을 뒤지며 각종 사진들을 찾았고 인테리어 앱을 활용해 다른 분들의 현실성 있는 레퍼런스도 많이 참고했습니다.

 

 

 

두 번의 변화를 거친 거실

초창기 거실 : 심플한 서재형 거실

 

 

헤밍웨이의 거실을 떠올리며 만든 초기 거실의 모습입니다. 가구도 많지 않았고 좀 더 심플하고 1인 생활에 최적화되어 있는 서재형 거실이에요. 평소에 TV를 잘 보지 않아 거실을 어떻게 활용해 볼까 고민하다 서재형 거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전면에 배치한 책상에선 업무와 같은 비교적 이성적인 작업을 하고, 뒤편에 안락의자를 설치해 독서와 같은 말랑말랑한 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열대 휴양지 에어비엔비’, ‘고독한 작가의 작업실’, ‘페르시안 고양이(?)만 있으면 딱일 집’. 첫 번째 거실 구조를 만들고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들입니다. 어떤 것들은 제가 의도하기도 했고 어떤 것들은 생각했던 바와 달라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제가 아끼는 것들이 누군가에게 선명한 인상을 주었다는 건 기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거실 : 식물이 가득 찬 숲속 홈 오피스

 

 

일조량에 따라 겨울철 식물들을 배려한 지금의 거실 구조입니다. 식물에 대한 사랑이 커져가면서 식물들도 많아지게 되었고 거실 구조를 바꿔야 할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겨울이 되며 해가 짧아지고 집이 남동향인 탓에 거실 오른쪽에 있는 식물들은 거의 빛을 못 받게 되었는데요. 이쯤 되니 이 집의 주인이 누군지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이긴 하나, 소중한 친구들이 시들어가는 모습을 볼 순 없었습니다.

 

 

 

 

거실 왼편으로 아이보리 러그를 깔고 둥글둥글한 아카리 조명과 함께 식물들을 위한 작은 쇼룸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한쪽에는 사방탁자가 있는데요. 황학동 고가구 시장에서 구입한 제품입니다. 한국 고가구가 하나 갖고 싶어서 황학동을 둘러보던 차에 어느 할아버지의 가게 앞에 섰어요. 오래된 책, 각종 가구들에 뒤덮여 있는 사방탁자가 하나 있었는데 왠지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할아버지에게 부탁했습니다. 

 

함께 20분간 주변을 다 정리하고 가구를 막상 보니 그렇게 오래된 느낌이 안 드는 거예요. 가격도 생각한 것보다 저렴하고요. 더 오래된 느낌일 줄 알았는데,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얼마나 된 건지 여쭈었더니, 근래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씀이 100년이 안 되면 다 근래라고, 그 숙연함에 반해 바로 구입해버렸고 지금도 거실의 포인트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습니다. 

 

 

 

 

사방탁자 위에는 직접 만든 분재를 올려 주었습니다. 특유의 고즈넉함을 더해주는 고마운 친구입니다.

 

 

 

 

최근엔 작은 집에 어울리는 낮은 데이베드를 설치했는데요. 안락의자만 하나 두고 생활하니 혼자 지낼 땐 괜찮았는데 친구들이라도 오면 앉을 곳을 찾지 못해 카펫 주변을 기웃거리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소파를 떠올렸으나 소파의 팔걸이와 헤드레스트 부분이 안 그래도 작은 집을 더 작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검색 끝에 데이베드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거의 매일 가구 크기를 체크하고 다녔더니 눈대중으로만 봐도 1미터 50과 1미터 80이 구분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설치한 데이베드는 주로 새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거나 유튜브를 보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집 분위기로만 보면 아날로그틱한 책과 공책만 가득할 것 같지만 사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현대인입니다. 가끔 감성적인 친구들이 놀러 오면, '우와 여기 있으면 진짜 책도 잘 읽히고 집중도 잘 되겠다' 하지만 그건 집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끔 오전 빛이 잘 들어오는 날이면 거실에 앉아 한동안 멍하니 시간을 보내며 새소리와 함께 휴식할 수 있는 축복이 있는 거실입니다.

 

 

 

창밖 녹음과 함께 잠에 깨는 침실

 

 

침실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입니다. 사실 별다른 연출을 하진 않았습니다. 큰 연출을 하지 않았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예쁜 공간이 되었다는 건 참 아이러니합니다. 다만 지금의 단순한 구조를 찾기까지 퀸 사이즈 침대를 5번을 넘게 옮겼습니다. 왜 디자인 거장들이 ‘Simple is the best’라고 했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옛날부터 아침 햇살이 일렁이는 잎사귀 그림자와 함께 방으로 들어오는 가운데 잠에서 일어나는 로망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암막 커튼을 사용하지 않았고 속 커튼만 설치했습니다. 햇살이 아름답게 들어오는 덕분에 늦잠을 자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늦잠 자고 싶은 날에는 바깥 베란다에 이불을 커튼처럼 널어놓고 자는 기이한 생활방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을을 맞아 침구를 바꾸고 평소 그렇게 갖고 싶었지만 친구들이 놀릴까 봐 시도해 보지 못했던 꽃무늬 레이스 커튼을 설치한 지금의 침실 모습입니다. 레이스 커튼을 사는 게 과연 괜찮을지 몇 번의 고민 끝에 결국 설치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참 예쁜 모습을 보니, 이제는 누가 놀려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낡음을 자연스러움으로, 주방

 

 

주방 고민의 시작은 숨길 수 없는 연식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였습니다. 시공 없이 스타일링만으로 인테리어를 하기에는 가스관이나 낡은 스테인리스 싱크대에서 드러나는 연식의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런 주방 스타일링에 영감을 준 아티스트는 '검정치마'입니다. 검정치마의 뮤직비디오를 좋아하는데요. 특히 <나랑 아니면>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를 좋아합니다. 위태롭고 불안하지만 진실된 느낌을 주는 젊은 사랑 이야기예요. 뮤직비디오에 담긴 공간들의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낡고 오래되고, 뒤죽박죽의 맥시멀한 공간이지만 그래서 더 깊게 그들의 이야기가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나의 주방은 오래되었고 낡았지만 그렇다면 '더 생활감이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공간으로 만들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린넨 커튼으로 싱크대를 가려주고 제가 직접 찍은 고양이 사진을 액자로 제작하고, 다이닝 테이블 위에 식물이 그려진 방수 패브릭을 얹었습니다. 조금 심심한 듯하여 꽃무늬 테이블 러너를 옆에 장식해 주었더니, 촌스럽지만 사랑스러운 공간이 되었습니다. 

 

집에 촬영하러 오시는 분들 중에 저희 집 주방을 사랑해 주시는 경우가 많기도 합니다. '꼭 정교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어떤 이야기가 느껴진다면, 누군가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도 하는구나'라는 즐거운 깨달음을 얻은 인테리어이기도 합니다. 

 

 

 

공간 분리로 만든 현관

 

 

19평의 작은 집이기 때문에 현관이나 복도라고 부를만한 공간이 따로 없습니다. 집의 대문을 열면 바로 거실이 나오는 구조인데요. 아마 작은 평수의 집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하지 않으실까 해요. 

 

만약 시공을 했다면 따로 중문 같은 것을 설치했겠지만, 시공 없이 스타일링으로만 집을 꾸미려고 했기 때문에 간편한 방식으로 공간 구분을 해주어야 했습니다. 낮은 신발장 두 개를 현관 양옆에 설치하고 그 위에 광목천을 얹어 소품들로 꾸며주었습니다. 명확한 파티션은 아니지만 이렇게 확실히 공간을 분리시켜주니 거실이 거실답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공간에 담긴 취향들

 

마지막으로 집안을 가득 채운 제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보여드릴게요. 향기와 식물을 좋아하다 못해 업으로 삼은 제가 하나둘 모은 소품들입니다.

 

 

 

나의 향 생활

 

팔로산토 스머지 스틱

유칼립투스 인센스

고무나무 인센스홀더

 

언제부터인지 향과 관련된 소품들을 좋아하는 제 모습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대학교 때 처음으로 태국에서 접한 이후로 줄곧 인센스는 즐겨왔지만 근래에는 초나 오일 워머 같은 아이템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해서 지금은 팔로산토, 스머지드 스틱 등 다양한 향 아이템들을 즐기고 있습니다. 독특한 향을 피우면 마치 현실과 단절된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개인적으로 인테리어란, 내가 원하는 자그마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가구나 마루 같은 시각적인 요소들 외에 향과 같은 후각적인 요소도 세계를 구성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향 아이템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오게 되면 일에 관한 고민이나 잡스러운 걱정이 덜 떠오릅니다. 격무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나의 식물 생활

 

 

식물을 접하고부터 삶의 많은 부분이 변했습니다. 처음엔 인테리어 관점에서 식물을 들이기 시작했는데요. 식물에 둘러싸여 살고 싶다는 로망,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것 같습니다. 하나둘씩 식물을 들이면서 점점 플랜테리어의 뛰어난 효과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흡사 자식과 같은 아이들에게 가성비라는 표현이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큰 가구를 들이거나 가구 배치를 전면 변경하는 등의 큰 공사 없이도 새로운 무드를 연출할 수 있는 기특한 아이들이 바로 식물들입니다. 드라세나 마지나타 같이 휴양지 느낌을 주는 식물이 거실에 있으면 마치 발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미니멀한 공간에 황칠나무나 아랄리아 한 마리를 두면 차분하고 묵직하게 공간을 잡아줍니다. 생기가 도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식물을 집에 들이고 가장 좋았던 건, 매일 아침 누군가와 함께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점이에요. 아프던 아이가 새로운 싹이라도 내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봄에 바람과 햇빛을 받아 살랑이는 잎사귀들을 보면 꼭 어딘가 여행에 와 있는 느낌도 줍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꼭 어머니들처럼 SNS 프로필 사진에 꽃이라도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있습니다.

 

 

 

 

또 식물을 들인다고 하면 왠지 벌레가 꼬일 것 같고 집이 복잡해지거나 죽일 것 같은 두려움이 들 것 같은데요. 이 부분도 실제로 그렇습니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에요. 물도 줘야지, 때 되면 분갈이도 해줘야지, 아무리 열심히 키워도 죽기도 하고요. 게다가 식물이 많아지면 집도 덩달아 복잡해져요. 그래도 이 집들이를 읽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집에 그 정도 에너지를 쓰실 여력은 충분하시지 않을까 생각해서 이렇게 길게 식물에 대해 자랑해 보았습니다.

 

 

 

집 소개를 마치며

 

 

과거엔 그럴듯한 자가 아파트에 들어가게 되는 경우에만 ‘인테리어'라는 걸 하고 살았던 문화였죠. 저도 전에는 그런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집을 꾸미고 산다고 하면 시공, 인테리어, 리모델링 이런 무거운 단어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집에 내가 좋아하는 소품 하나, 가끔 꽃 한 송이, 혹은 액자 하나 두는 것만으로도 ‘내 공간'이라는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집이 내 공간으로 온전히 생각될 때, 거기서 느껴지는 충만함과 포근함은 반복되는 일상을 생각보다 더욱 가득 차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이동이 잦은 몽골 사람들은 카펫을 들고 다니며 수시로 내 공간을 만들었다고 해요.

 

 

 

 

게다가 집을 꾸미며 몰랐던 제 모습도 발견하게 되었어요. 식물과 꽃을 좋아하고, 오래된 느낌과 패브릭을 좋아한다는 것, 따뜻하고 인간적인 정취가 배어 있는 분위기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 어쩌면 그렇게 살고 싶어 한다는 것까지.

 

지금까지 긴 집들이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이 각자에게 의미 있고 소중한 것들로 집을 채워나가길 바라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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